프로토콜은 가치를 확보하지 못하고 DAO는 리스크를 관리한다
이번 글은 가치 확보 관점에서 바라본 레이어-1과 레이어-2 프로토콜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DeFi 프로토콜 포킹에 대하여 글의 아이디어를 많이 차용하기도 했죠.
위 글들에서 자사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솔라나와 같은 레이어-1과 당시 자사가 레이어-2로 칭하던 토큰들에서 밸류 캡처 메커니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에 우리가 썼던 레이어-2는 단어의 오용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MKR, UNI, AAVE 같은 어플리케이션 레이어 토큰들을 레이어-2로 불렀엇죠. 하지만 이제는 레이어-2라 하면 Starkware, Matter, Aztec, Optimism, Arbitrum 을 뜻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는 어플리케이션 레이어 토큰들에 대한 밸류 캡쳐에 대해서 생각을 다듬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이번 글을 통해 펼치면서 디파이 토큰이 어떻게 가치를 포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어플리케이션 레이어 토큰
예전 가치 확보 관점에서 바라본 레이어-1과 레이어-2 프로토콜에서 자사는 디파이 토큰이 가치를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은 포킹할 수 없는 스테이트(unforkable state)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었죠.
도대체 이 ‘포킹할 수 없는 스테이트'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신다면 우선 유니스왑(Uniswap)과 0x를 비교해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만약 영희가 유니스왑 V2를 포킹해서 Multiswap(멀티스왑)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멀티스왑은 유동성이 0에 수렴할 것이지만 유니스왑은 이미 프로토콜 상에 존재하는 수십억 달러의 유동성이 그대로 유지될 겁니다. 이런 TVL(총고정가치)를 바로 우리가 ‘포킹할 수 없는 스테이트'라고 부르죠.
유니스왑 AMM 내에 더 많은 자본이 있다는 것은 테이커(taker)들의 입장에서 낮은 슬리피지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트레이더들은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죠.
그러나 반대로 영희가 0x 스마트 컨트랙트를 포킹하여 ‘1y 프로토콜'이란 것을 새로 만들었다고 가정해보면 위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집니다. 1y 프로토콜은 0x 프로토콜과 큰 차이 없는 성능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0x 스마트 컨트랙트 자체가 그렇게 많은 스테이트를 저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마트 컨트랙트와 외부와의 통합을 갖는 API는 별개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실제로 매매가 일어나더라도 0x 자산 스왑 컨트랙트의 스테이트는 변치 않으니까요.
물론 0x 프로토콜이 수년간 축적해온 오프체인 스테이트가 있을 수 있고, 이는 1y 프로토콜이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는 부분이죠. 예를 들어, DEX 어그리게이터, 지갑, 릴레이어 등 외부 요소들과의 통합이 꼽힐 것입니다. 하지만 디파이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속도는 매우 빠르기 때문에 포킹 자체에 매우 너그럽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써드파티 어플리케이션들도 포킹된 버전에 대한 통합과 채택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복사-붙여넣기 한 것 같은 포킹된 버전의 새로운 프러덕트라고 할지라도 시장에서 즉시 경쟁 가능할 정도이죠. 밑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DEX 어그리게이터의 부상, 뱀파이어 어택, 프론트엔드 통합, 매력적인 유동성 인센티브로 인해 복사-붙여넣기한 프러덕트일지라도 경쟁 자체가 어렵지 않아진거죠.
지금까지 자사가 써왔던 ‘포킹할 수 없는 스테이트'를 유지하는 것과 관련된 프레임워크가 가진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프레임은 “프로토콜의 방어성"에 대한 평가를 함에 있어서는 매우 유용했지만, 토큰 자체가 어떻게 가치를 포착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을 통해 그 답을 해보고자 합니다: “이 토큰은 밸류 캡처와 수수료 추출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디파이 상에서의 밸류 캡처란
디파이 프로토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리스크를 관리하는 프로토콜과 그렇지 않은 프로토콜, 이 두 가지로 나뉘죠. 전자에 속하는 토큰들은 항상 포킹되는 것에 대한 리스크를 지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 유니스왑의 예로 다시 한 번 돌아가볼까요? 유니스왑은 굉장히 많은 스테이트를 보유하고 있죠. 거버넌스 파라미터 측면에서 어떤 AMM 커브를 지원할지, UNI와 LP 간 수수료 분배, UNI 트레저리(공적 자금)의 분배 등에 대한 사항은 어느 정도 정해져있지만 토큰 자체가 시스템 상의 리스크를 막거나 관리하진 않습니다. UNI-LP 수수료 스위치가 활성화되면 유니스왑 테이커와 메이커에게 세금이 부과될 것입니다. 또한, UNI 트레저리는 모든 UNI 보유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죠. 이는 인플레이션의 형태를 띄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각 거래별 차원에서 본다면 UNI 토큰의 존재는 메이커와 테이커를 포함한 유니스왑 프로토콜 사용자들에게 있어서 가치를 오히려 파괴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UNI 토큰의 존재가 유니스왑을 메이커나 테이커들에게 더 나은 시스템으로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죠.
이제 메이커를 예시로 생각해보죠. MKR 보유자들은 메이커의 신용이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되면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3월 검은 목요일 사태가 벌어졌을 때 MKR 보유자들이 이런 역할을 했죠. MKR 보유자들은 메이커가 파산 상태에 이르러 자신들의 토큰이 희석되는 리스크를 짊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리스크를 지는 이들에게 시스템은 수수료를 나눠주어 보상하는 것이죠. 아베(Aave) 역시 Aave v2를 내놓으면서 최근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를 통해, AAVE 토큰이 리스크의 최후의 보루가 되는 것이죠.
퍼페츄얼 프로토콜(Perpetual Protocol)을 비롯한 기타 디파이 파생상품 거래소는 트레이더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거래하게 만들기 위해서 보험 펀드를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충분한 사이즈의 보험 펀드가 없이는 거래소 입장에서 클로백(clawback)이나 자동 디레버리징을 통해 수익을 낸 트레이더들에게서 돈을 받아 반대편의 손실을 메꿔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PERP, DDX, FST, MNGO를 비롯한 디파이 파생상품 거래소의 네이티브 토큰은 이렇게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이들이 청산 당할 때 민팅되거나 스테이킹되거나 슬래싱되어 효과적인 보험 펀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BitMEX, OKEx, FTX, Binance 등의 높은 레버리징을 가능케하는 무기한 파생상품을 판매하던 곳들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바를 비춰보면 보험 펀드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리스크가 있다해서 꼭 최후의 보루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더 넓힐 필요가 있죠. 리스크는 효과적으로 관리되어야 합니다.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특히 돋보이는 분야는 컴파운드(Compound)와 아베(Aave)와 같은 대출 프로토콜입니다. 이러한 프로토콜이 담보물에 대한 제한을 낮추어 어떤 종류의 담보물이건 받게 된다면, 적대적 행위자들은 나쁜 담보를 맡기고 스테이블 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좋은 담보를 빼간 뒤 러그풀을 자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대출을 해주는 이에게 큰 손실을 입힐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AAVE와 COMP 보유자들이 어떤 종류의 담보물을 받을지와 기타 리스크 파라미터에 대해서 관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잘못된 파라미터 설정으로 인해 시스템이 리스크 혹은 손실을 겪게 되면 이에 대한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게 되죠.
레버리지를 제공하는 프로토콜이라면 어떠한 종류이건 리스크 관리를 해야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레버리지는 내재적으로 리스크를 품고 있기 때문에 관리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거버넌스 토큰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버리지가 없는 UNI와 같은 토큰들은 사실 거버넌스에 쓰일 부분이 많지 않죠.
규모의 경제
위에서 다뤘던 “안전장치 프레임워크"는 사실 네이티브 토큰이 1) 높은 시가총액을 보유하고 있거나, 2) 유동성을 많이 보유한 규모가 큰 프로토콜로 귀결되었습니다. 규모의 경제인 셈이죠.
예를 들어, 어떤 팀이 아베를 포킹해서 새로운 대출 프로토콜인 수아베(Suaave)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이 수아베를 만든 팀이 상당히 많은 자본을 가지고 시작해서 TVL을 약 100억 달러 규모로 시딩해서 시작했다고도 추가로 가정해보죠. 자연스럽게 이 팀은 SUAVE라 불리는 신규 토큰을 발행할 것입니다.
AAVE와 SUAVE 토큰 모두 각자의 생태계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면 여전히 아베 프로토콜이 대출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더 나은 선택지일 것입니다. 왜일까요? AAVE 토큰이 이미 시총 수준과 유동성 수준에서 SUAVE를 비롯한 기타 토큰들이 복제하기엔 너무 어려운 수준으로 커져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AAVE는 전체 시스템에 있어서 더 나은 안전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어느 정도 분배되어 있는 AAVE 토큰과 시스템이 수차례 투표와 업그레이드를 거치면서 갖게 된 커뮤니티 내부의 끈끈함과 믿음이 가져온 카르텔화는 악의적 행위자들이 거버넌스를 망칠 수 없게 만듭니다.
결국 이는 아주 강력한 플라이휠이 됩니다. 규모가 가장 큰 플랫폼으로서 유동성과 시가총액의 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한 안전성으로 더 많은 사용자들을 끌어당기게 되죠. 이러한 신규 유저들은 자본, 수입, TVL을 더 플랫폼으로 가져오고 네이티브 토큰의 가격 역시 올라가며 플라이휠이 더 강화되게끔 만듭니다.
이러한 플라이휠은 리스크를 관리하지 않거나 안전장치가 부족한 시스템에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플랫폼 안전성"이라는 개념이 부재하기 때문이죠.
리스크 관리 없이 불필요한 수수료 추출
장기적으로 볼 때 시스템 상의 리스크를 관리하지 않는 토큰은 포킹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디파이 사용자들은 정말로 수수료를 추출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쓸까요? 그리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건 중요한 문제일까요?
현재 이 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디파이 사용자들이 상대적으로 수수료에 민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상태가 계속되리란 보장도 없죠. 제프 베조스가 말한 유명한 말인 “Your margin is my opportunity(당신이 남기는 마진이 나의 기회).”처럼 불필요한 수수료를 떼는 행위가 클수록 제3자가 끼어들어 수수료를 내지 않도록 포킹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할 유인이 커질 것입니다. 특히, 자사는 암호자산 지갑을 비롯한 각종 프론트엔드 상품들이 이러한 행위를 하고 마치 유저들을 위해서 온전히 한 것처럼 포지셔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영희가 스시스왑을 포킹해서 덴뿌라(Tempura)를 만들었다면 LP들이 스시스왑에 계속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특히나 스시스왑에서는 25 bps를 벌지만 덴뿌라에선 30 bps를 번다면 말이죠. 물론 스시스왑에 계속 LP들이 남는 이유는 브랜드 파워의 차이로 인한 테이커의 플로우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100억 달러 어치의 ADV에 대한 25 bps가 0 달러 어치의 ADV에 대한 30 bps보다 낫다는 것은 자명하니까요.
하지만 만약 모든 LP가 자신들의 자본을 덴뿌라로 옮기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트레이더들이 DEX 어그리게이터와 프론트엔드 프러덕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결국 테이커 플로우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디파이의 영역에 들어오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여러 베뉴의 가격을 모아서 보여주는 하이퍼 로컬라이즈된 인터페이스를 가진 프론트엔드 앱들을 마주하게 되겠죠. 이로 인해 각 디파이 프리미티브들은 고객 관계를 소유하지 못하게 되면서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똑똑한 시장 참여자들은 불필요한 수수료를 내야한다는 사실에도 신경을 쓰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지배적인 점유율을 가진 프론트엔드 앱들이 수수료를 뽑아내는 토큰들을 포킹해버리게 될 것입니다.
갈무리
디파이 토큰의 밸류 캡처를 정당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스템 내에서 관리되어야 할 리스크에 대해 대처한다는 것일 겁니다.
논리적으로 이를 극한으로 끌어당겨 생각해본다면 이 프레임워크 하에서 UNI, SUSHI, YFI와 같은 디파이 토큰은 자신들의 생태계 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과 특성을 갖추는 것을 고려해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생태계 내에 리스크의 총량이 증가한다면 포킹이 점차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만약 새로운 디파이 프로토콜을 만들면서 어떻게 토큰의 가치 확보를 최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누고 싶다면 언제든 아래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spencer@multicoin.capital kyle@multicoin.ca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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