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자산 개발과 투자에 관심이 많은 커뮤니티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단어는 단연 ‘프로토콜’입니다.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누구나 프로토콜을 구축하고 있을 뿐더러 투자자와 직원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프로토콜들은 수익을 얻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프로토콜은 유형의 사물이 아닙니다. 추상적인 개념으로, 일련의 규칙들을 말합니다. 프로토콜의 정의를 놓고 보면 사실 프로토콜에 투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투자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실제로 암호자산 투자자들은 프로토콜이 아니라 특정 프로토콜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희소 자산에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다만, 모든 프로토콜에서 발행되는 자산이 가치를 확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가치가 있고 어떤 것은 없습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가치 확보(value capture) 관점에서 레이어-1과 레이어-2 프로토콜을 살펴보고, 각 레이어에 적합한 가치 확보 프레임워크를 제안해보려고 합니다.
레이어-1의 가치 확보
레이어-1 토큰의 존재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51% 공격으로부터 블록체인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것이죠.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암호자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흔히 블록체인의 수가 수천 개 혹은 수백만 개에 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정 이더민트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여러 소규모 체인처럼 같은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체인들도 있는 반면 솔라나, 디피니티, 알고랜드, 이더리움, 비트코인, 모네로 등등 고유한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체인 또한 존재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블록체인의 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13개의 블록체인이 51%공격에 노출된 적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이는 비단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암호자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더리움 클래식, 비트코인 골드, 그리고 버지(Verge) 역시 시가총액 기준 상위 20권 안에 들었을 당시 51%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블록체인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근근이 연명 중이지만, 회복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사용자의 입장에서 51% 공격을 받지 않은 블록체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51% 공격에 노출된 적 있는 블록체인에 자신들의 부를 저장할 타당한 이유가 있을까요?
비트코인을 가능케 한 돌파구는 기술도, 암호법도, 분산 시스템도 아닙니다. 바로 게임 이론입니다. 그 핵심이 작업증명(POW) 합의 알고리즘인데, 채굴자는 원장을 보관하는 대신 새롭게 채굴된 비트코인으로 보상 받게 됩니다. 또한, 비트코인의 가치를 손에 넣으려는 각각의 채굴자가 네트워크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보상 체계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블록체인의 보안성을 비교하는 지표로 51% 공격에 소요되는 비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51% 공격을 실행하기 위해 공격자는 해당 블록체인의 보안 예산을 뛰어넘는 돈을 써야 합니다. 보안 예산을 달러로 계산하는 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안 예산 = 네트워크 총 가치 x 인플레이션율 + 거래 수수료
위 공식으로 계산한 값은 네트워크 보안을 위한 최대 비용이 아니라 최소 비용입니다. 게다가 POW에 기반한 코인 채굴 전용 ASIC 시장의 공급 제약으로 인해 51% 공격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쉬운 계산을 위해 비트코인의 시가 총액이 1천억 달러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현재 비트코인의 인플레이션이 매년 4% 정도입니다. 거래 수수료는 아예 0이라고 생각해보죠. 실제로도 채굴자들의 수익 거의 대부분이 거래 수수료가 아닌 인플레이션에서 발생됩니다. 위 공식에 대입해서 계산해보면, 돈을 벌고자 하는 정직한 채굴자의 경우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위해 적어도 일 년에 4천억 달러(1천억 달러 x 4%)를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따라서 비트코인의 보안 예산 역시 연간 4천억 달러가 됩니다.
위 예시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듯이 보안은 결국 네트워크의 총 가치에 의해 결정됩니다. 주요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인플레이션이 치솟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0%나 1%, 또는 2%의 인플레이션은 충분히 타당하지만, 연간 인플레이션이 5%를 웃도는 국경없는 글로벌 화폐가 사람들의 장기적인 선택을 받을 일을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보안은 결국 네트워크의 가치로 귀결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네트워크 효과가 일어납니다. 블록체인의 가치가 클수록 보안도 더욱 강화되는 것이죠. 나아가 네트워크의 보안이 탄탄할수록, 다음 한계사용자는 큰 고민없이 해당 블록체인에 부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블록체인이 존재하는 시장이 그 균형을 중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몇 안 되는 네트워크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가치 또는 보안에 있어 1위도, 2위도 아닌7위에 해당하는 블록체인을 선택하는 사용자가 얼마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