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서는 “특정 암호자산이 경쟁에서 대승을 거두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변하기 위한 근본적인 가설 세가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여기서 해당 가설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려고 합니다. 참고로, 이 세가지 가설 모두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바로 강력한 가치저장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 가설들은 국경없는 화폐들이 가치저장 수단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여러 선택지를 묘사합니다.
가치저장 수단 가설
가치저장 수단(SoV) 가설은 세가지 가설 중 가장 직관적이며 기존의 화폐, 경제, 희소성 등에 대한 이해와 가장 일치합니다. 본 가설은 돈과 희소성에 대한 기존의 패러다임이 변함없이 미래에도 투영되어야 한다고 가정한다는 점에서 세가지 가설 중 가장 보수적인 접근법을 취합니다.
가치저장 수단 가설은 암호자산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아래와 같은 특징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 자기주권: 가치저장 수단은 물리적인 위협이 없다면 주인으로부터 그 소유권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 검열저항성: 그 누구도 사용자의 암호자산의 사용을 차단할 수 없습니다.
- 희소성: 화폐공급이 고정되어있거나 최소한 예측가능하고 조작불가능하여 폭넓은 사회적 합의 없이는 변경할 수 없습니다.
- 보안성: 사용자들이 키를 잃어버리는 등의 행동적인 이유 혹은 고장난 스마트 컨트랙트와 같은 기술적인 이유 등 어떠한 경우에도 본인의 자금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해야 합니다.
가치저장 수단 가설의 극단적인 지지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가치저장 수단 자체로 활용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거래 수수료가 높아도 되고, 거래 컨펌 속도가 느려도 되며 거래 내역을 다른 이들이 볼 수 있어도 상관없다. 심지어 가치가 프로그램화되거나 유연하지 않아도 된다.”
이보다 더 극단적인 지지자들은 아무리 위 특징들의 정도를 낮춤으로써 한계효용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아무런 쓸모가 없는데 왜 가치저장 수단이 좋은 것일까요? 이 가설의 지지자들은 가치저장 수단이 조금 더 실용적인 교환 매개체로 전환될 수 있다면 가치를 저장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마치 저축 예금계좌와 당좌 예금계좌와 같은 것이죠. 사용자들은 저축계좌에 부를 저장해놓고 이 중 일부를 조금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당좌계좌로 돈을 이체하여 사용합니다.
본 가설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큰 비율로 경제학자들이거나 어느정도 경제학에 지식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 관점에서 “건전한 돈"이란 불가변하고 안정적이며 검열저항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가치저장 수단이란 것은 모든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활용성을 뛰어넘는 것이죠.
이런 가치저장 가설에 부합하는 암호자산에는 비트코인(Bitcoin), 모네로(Monero), 지캐시(Zcash) 등을 비롯해 디크레드(Decred)와 같은 자산도 이에 해당합니다. 각 암호자산은 경쟁하기 위해 몇 가지 요인을 개별적으로 최적화하지만 통상적으로 최소한의 활용성 이상의 쓰임새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은 검열저항성을 최대화하고 모네로는 익명성과 대체성을 우선순위에 두며 지캐시는 기존 기관들에 친화적인 접근법으로 선별적인 프라이버시를 제공합니다. 또한 디크레드는 거버넌스를 중요시합니다.
극단적으로 가치저장 수단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위에 나열된 암호자산들 중 비트코인이 해당 가설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네로와 지캐시 같은 경우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고 디크레드는 공식적인 거버넌스를 우선시하지만 비트코인은 한계효용의 비용으로 그 어떠한 특징도 희생하지 않는 대신 효용성으로 대표할만한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활용성 가설
활용성 가설은 가장 활용성이 높은 프로토콜이 가치를 확보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가설입니다. 하지만 활용성이라는 것은 애매모호한 개념입니다. 각기 다른 개인과 기업들이 활용성이 높다고 느끼는 프로토콜의 특성은 다양합니다. 여기에서 모든 특성을 모두 최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는 프로토콜이 무언가를 얻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희생해야 하는 n차원의 트레이오프 공간의 특정 지점에서만 가치를 올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기 때문이죠.
활용성의 예시 중 대표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거버넌스
- 프라이버시
- 거래 처리량
- 거래 컨펌 시간 (지연속도)
- 유연성과 프로그램 가능성
- 형식검증
- 기존 법규를 준수할 수 있는 능력
- 가격 안정성
가치저장 수단 가설의 지지자들은 위와 같은 활용성들이 프로토콜 차원에서 적용되면 위에 기술한 가치저장 수단으로써의 특징들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통상적으로 옳은 주장입니다. 실제로 추가적인 활용성이 프로토콜의 기능으로 추가되면 어느 정도 트레이드오프가 발생하게 됩니다.
활용성 가설의 지지자들은 활용성을 포기하고 가치저장 수단만을 위해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본 가설의 지지자들은 프로토콜의 활용도를 높임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과 사업체들의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고 네트워크 효과와 더불어 도입이 가속화되면 해당 시스템이야말로 경쟁에서의 대승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활용성 가설의 지지자들은 경제학자보다는 기술자들에 가깝습니다. 특히,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실리콘밸리 출신들이 많죠. 실리콘밸리는 충족되지 않은 수요의 발굴, 제품 구축, 바이럴리티 기획, 그로스 해킹 등의 미학을 거의 통달했으며 이러한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는 거대조직을 구축하는 것에 또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가치저장 수단 가설은 지루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점과는 본질적으로 호환되지 않는 것이죠. 이들에게 최종소비자의 효용성을 최대화시키지 않는 제품을 구축하는 것은 이해가 안되는 행위입니다. 활용성 맥시멀리스트들에게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도입하고 사용하면서 이를 좋아해주는 것이 화폐의 “건전성" 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활용성 가설에 부합하는 암호자산에는 비트코인 캐시(Bitcoin Cash), 이더리움(Ethereum), EOS, 테조스(Tezos), 디피니티(Dfinity), 코스모스(Cosmos), 카데나(Kadena), 헤데라 해시그래프(Hedera Hashgraph), 에이온(AION), 아이콘(ICON), 폴카닷(Polkadot) 등이 있습니다.
활용성 가설에 부합하는 암호자산의 목록을 가치저장 수단의 목록과 비교했을 때, 암호자산에 투사되는 대부분의 엔지리어링 및 리서치 노력들이 활용성 가설에 따라 흘러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가설
스테이블코인 가설은 실질적으로는 활용성 가설의 범주에 포함되나 별도로 분류하여 설명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가설은 사용자들에게 있어 가격안정성이 가장 가치있는 효용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특히, 불안정한 정부 및 화폐 국가의 주민들이 암호화폐의 통용적인 혜택과 더불어 가격이 안정적인 자산을 원한다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죠. 여기에서 말하는 암호화폐의 통용적인 혜택이란 자기주권, 검열 저항성, 보안성, 임의로 조작할 수 없는 화폐공급 등을 의미합니다.
본 가설의 지지자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암호자산의 가치에는 거품이 많으며 가격안정성이 상업의 기본적인 요구사항이기에 그 누구도 큰규모의 상업으로는 암호자산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부는 스테이블코인의 거시경제학과 스테이블코인은 망할 것이다라는 글을 통해 탈중앙화·개방형·비허가성·부동성의 스테이블코인은 경제학적으로 불가능하며 만약 검은백조 현상이 일어난다면 시스템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경제학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여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대신, 스테이블코인이 적어도 한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0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경제학적인 이슈 외에 스테이블코인이 당면한 도전과제들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대부분의 정부들이 블록체인 상에서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암호화폐를 발행할 가능성은 높습니다. 이를 통한 혜택은 분명합니다. 바로 블록체인이 정부들에게 대중감시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완벽한 수단이라는 것이죠.
미국을 비롯한 많은 정부들이 현재 법정화폐를 비트코인 혹은 이더리움과 같은 비허가형 오픈 블록체인에 발행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정부가 화폐공급을 통제할 수 있는 허가형 블록체인에서 화폐를 발행하고 상당한 수준의 신원확인(KYC)을 거쳐야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향후 5년 안에 작고 안정적인 정부에서 KYC를 필요로 하지않은 블록체인에서 화폐를 발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해당 국가에 대한 화폐의 수요는 급등할 것이며 국고 또한 크게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탈중앙화된 오픈 스테이블코인이 정부가 지원하는 “담보형" 스테이블코인과 어떻게 경쟁할지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전세계적으로 접근이 가능하고 홍보가 잘 되어있으며 검열저항성을 가지고 있죠.
추가적으로, 탈중앙화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를 담보로하여 기존 기관들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과도 경쟁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초반에 나온 예시로는 테더(Tether)와 트루USD(TrueUSD) 코인 등이 있죠. 스텔라(Stellar)는 앵커를 사용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개방형 탈중앙화 스테이블코인의 선두주자로서는 메이커(Maker), 비트USD(BitUSD), 베이스코인(Basecoin), 프래그먼츠(Fragments), 카본(Carbon), 해븐(Havven) 등이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해당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가치저장 수단 가설은 현재 인류가 가지고 있는 돈과 경제에 대한 이해와 가장 일치합니다. 금의 활용성은 제한되더라도 수천 년 간 인간에게 있어 최상의 가치저장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을 목표하는 이유입니다. 가치저장 수단 가설의 지지자들은 비트코인이 실제로 큰 쓸모가 없더라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금도 그렇기 때문이죠.
활용성 가설은 기술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장 잘 일치합니다. 기술자들의 관점은 소프트웨어 설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만약 가치저장 수단의 원칙 몇 가지의 정도를 희생한다면 가치 있는 소프트웨어가 여럿 탄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경우, 기술자들은 검열저항성을 극대화한 단일의 블록체인보다도 다양한 형태의 효용성으로 구성된 n차원의 트레이드오프 공간에서 중립적인 회색영역에 가치가 쌓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테이블코인 가설은 상업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돈의 가치는 가격안정성이며 상업을 제일 중요한 분야로 상정합니다. 따라서 다른 그 무엇보다 가격안정성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가설들은 필연적으로 상호배타적이지는 않습니다. 미래에는 여러 블록체인이 다 합쳐서 수십조 달러 규모의 가치를 흡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되고 고성능의 스마트 컨트랙트 플랫폼은 인류가 새로운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근간이 될 수도 있죠. 여기에 어느 정도의 네트워크 효과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페이스북(Facebook)이 모든 형태의 SNS 플랫폼을 지배하지 않은 것처럼 절대적인 규모의 네트워크 효과가 필수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블록체인간 경쟁의 양상은 열린 결말이자 아직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멀티코인 캐피털은 이 거대하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부터 교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본 글을 작성함에 있어 의견을 개진 해주신 Matt Huang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고지사항: 필자는 공개적으로 활용성 가설을 지지합니다. 멀티코인 캐피털은 가치저장 수단 가설과 활용성 가설에 해당하는 암호자산에 투자했지만 스테이블코인 가설에 해당하는 암호자산에는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자사는 스테이블코인 투자 기회에 대해 평가해왔으며 앞으로도 지속 평가할 계획입니다.
이에 대한 배경이 궁금하시다면 닉 재보(Nick Szabo)의 저명한 글인 Shelling Out: The Origins Of Money을 읽어보시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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